책/소설

[국내소설] <빛의 과거>, 은희경 - "나는 그 빛을 향해 손을 뻗었다. 끝내는 만져보지 못한 빛이었다."

아사히일본어 2020. 10. 29.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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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내소설 <빛의 과거>, 은희경 - "나는 그 빛을 향해 손을 뻗었다. 끝내는 만져보지 못한 빛이었다."

 

빛의 과거

빛의 과거

저자   은희경

출판사   문학과지성사

출판일  2019.08.30


책소개 [인터넷 교보문고 제공]

은희경이라는 필터를 거쳐 오늘, 나의 이야기가 되는 그때 그 시절의 이야기!

은희경의 장편소설 『빛의 과거』. 《태연한 인생》 이후 7년 만에 선보이는 장편소설로, 깊이 숙고해 오랫동안 쓰고 고쳐 쓴 작품이다. 갓 성년이 된 여성들이 기숙사라는 낯선 공간에서 마주친 첫 다름과 섞임의 세계를 그려냈다. 기숙사 룸메이트들을 통해 다양하며 입체적인 여성 인물들을 제시하고 1970년대의 문화와 시대상을 세밀하게 서술한다.

2017년, 중년 여성 김유경은 오랜 친구 김희진의 소설 《지금은 없는 공주들을 위하여》를 읽으며 1977년 여자대학 기숙사에서의 한때를 떠올린다. 같은 시공간을 공유했으나 전혀 다르게 묘사된 김희진의 소설 속 기숙사 생활을 읽으며, 김유경은 자신의 기억을 되짚는다. 기숙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룸메이트다. 타의에 의해 임의로 배정된 네 명이 한 방을 쓰는데, 임의의 가벼움에 비해 서로 주고받는 영향은 터무니없이 크다.

국문과 1학년 김유경의 322호 룸메이트는 화학과 3학년 최성옥, 교육학과 2학년 양애란, 의류학과 1학년 오현수다. 최성옥과 절친한 송선미의 방인 417호 사람들(곽주아, 김희진, 이재숙)과도 종종 모이곤 한다. 1977년의 이야기는 3월 신입생 환영회, 봄의 첫 미팅과 축제, 가을의 오픈하우스 행사 등 주요한 사건 위주로 진행된다. 김유경의 서사가 굵직하게 이어지는 사이사이, 322호와 417호의 룸메이트인 일곱 여성들의 에피소드도 다채롭게 전개된다.

김유경은 말더듬증이라는 약점 때문에 자신의 욕망을 내리누르며, 말과 행동이 필요한 순간 입을 다문다. 회피를 방어의 수단으로 내세우면서 자신을 끊임없이 세상의 어중간한 어디쯤에 위치시키려 한다. 한편 누군가는 자신의 욕망에 충실하다. 무리에 휩쓸리지 않고 번거로움을 감수하며 취향을 조용히 발전시키는 오현수, 남을 끌어내려 항상 주인공이 되길 바라는 김희진, 그와 비슷하지만 남의 눈이 아니라 무엇보다 자신의 욕구 충족이 중요한 양애란이 그렇다.

지향점과 실제의 삶에 괴리가 심한 사람도 있다. 최성옥처럼 자신이 선택한 남성에 의해 그 괴리가 발생하기도 하며, 끊임없이 다른 사람을 자신의 입맛에 맞추어 교정하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이 매사 주요하게 지적했던 바로 그 지점에서 발을 헛디뎌버리는 곽주아 같은 경우도 있다. 그들은 치졸하고 나이브하며, 소탈하기도 섬세하기도 하다. 선량하고도 얄미우며 까칠하면서도 유약하다. 마치 오늘의 우리처럼. 회피를 무기 삼아 살아온 한 개인이 어제의 기억과 오늘을 넘나들면서 자신의 민낯을 직시하여 담담하게 토로하는 내밀한 문장들은, 삶에 놓인 인간으로서 품는 보편적인 고민을 드러내며 우리 자신을 바라보게 한다.
 

빛의 과거:은희경 장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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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나의 가장 오래된 친구가 되어 있었다. 

끊어진 건 아니지만 밀착될 일도 없는, 

간격이 불규칙한 점선 같은 관계였다.
.
나로 하여금 위성처럼 그녀의 궤도를 따라 돌며 

그녀라는 일방적이고 변덕스러운 광원을 

반사하도록 만들어 버리는 것이다.
.
여러 사람과 공유한 시간이므로 

누구도 과거의 자신을 폐기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편집하거나 유기할 권리 정도는 있지 않을까.
.
개별적인 '다름'은 필연적으로 

'섞임'으로 나아가게 되는데, 

거기에는 비극이라고 이름 붙일 만한 

서투름과 욕망의 서사가 개입될 수밖에 없었다. 

다름은 개인성의 독립이지만 

섞임이 그 종합은 아니기 때문이다.
.
취향을 갖는 일은 

번거로움을 감수하는 개인행동이란 점에서, 

그리고 비용을 요구한다는 측면에서 

꽤나 적극적인 행위였다. 
.
혼자라는 건 어떤 공간을 

혼자 차지하는 게 아니라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 

익명으로 존재하는 시간을 뜻하는 거였다.
.
무심코 고개를 젖혀보니 별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태어난 곳을 떠나온 뒤 

몇십, 몇백 광년의 미지를 통과해서 

이제야 내게로 도착한 빛이었다. 

나는 어둠 속에 선 채로 

한참 동안 그 빛을 한사코 바라보았다.
.
우리는 장점의 도움으로 성취를 얻지만 

약점의 만류로 인해 

진정 원하던 것을 포기하거나 빼앗긴다. 

어쩔 수 없이 약점은 삶의 결핍과 박탈을 관장한다.
.
시간이란 모든 생명 있는 것들의 곁을 스쳐 가며 

갖가지 슬픔과 기쁨의 무늬를 새기지만 

결국은 모두를 소멸로 이끄니까.
.
첫사랑의 죽음에는 애도 기간이 필요 없다. 

주인공의 죽음과 상관없이 

비극에는 에필로그가 필요 없다. 

잊는 것만이 완전한 애도이다. 

스무 살 나의 여름과 함께.
.
욕망이나 가능성의 크기에 따라 

다른 계량 도구를 들고 있었을 뿐 

살아오는 동안 지녔던 

고독과 가난의 수치는 비슷할지도 모른다. 
.
나에게 그날은 그런 것들로 기억된다. 

기울고 스러져갈 청춘이 

한순간 머물렀던 날카로운 환한 빛으로. 

나는 그 빛을 향해 손을 뻗었다. 

손끝 가까이에서 닿을락 말락 흔들리고 있지만 

끝내는 만져보지 못한 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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